김병삼 목사님의 책, ‘다시 교회’를 보게 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1) 말씀에 보니 양심을 버린 것과 믿음이 파선하는 것을 연관지어 말합니다. 우리가 양심을 버리는 것이 믿음을 버린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세워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진실성을 잃어버리면 그 교회는 파선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착한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죄 짓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입니다.
2) 우리가 보통 양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심은 대로 거두기를 바랄 때를 말합니다. 만약 내가 심은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바란다면 그것은 은혜이긴 하지만 욕심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몇 배 큰 축복을 바라보며 산다면, 내가 심은 대로만 거뒀을 때 은혜라고 생각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감사를 고백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착한 양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은혜로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그런데 사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믿음으로 지킨다고 하지만, 정말 온전할 수 있을까요? 목사인 저조차도 자신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가 조금 위로를 주자면, 우리가 회개할 수 있다면, 회개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래도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고 죄를 짓는데도 양심에 가책이 들지 않는다면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4) 여기서 우리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솔직함’과 ‘진실함’의 차이를 아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솔직하다는 것을 진실하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실하라고 말하지 솔직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솔직한데,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놔 공동체를 곤란에 빠트립니다. 우리의 솔직함이 진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는 기준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거짓과 화인맞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교회를 세워나가고자 할 때 우리 안에 바른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고 나아가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가치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