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Jesus 32. 십자가의 길 위에선 개척교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사야 53:5)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면, 내 마음은 어김없이 한없이 작아지고 맙니다. 그분이 당하신 수치와 상처, 그 고통스러운 침묵 속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깊이는 도무지 인간의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요. 뺨을 맞고, 조롱을 당하고, 가시관을 쓰신 채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그 발걸음은 단순한 비극의 행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고, 온 인류를 향한 구속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개척교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길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고난의 깊이를 묵상할 때마다 오히려 오늘 우리의 방향이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를 세우는 길에는 수많은 전략이 동원됩니다. 누구를 타겟으로 할지, 어떤 콘텐츠로 관심을 끌 것인지, 재정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등등. 물론 그것이 불필요한 고민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들이 교회의 정체성보다 앞서기 시작할 때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고, 하늘의 보좌를 뒤로 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논리로 보면 실패자였습니다. 왕으로 오셨는데 왕관은 가시였고, 군중을 이끄는 대신 홀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낮아지심 안에, 세상의 모든 영광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승리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히 개척교회는, 십자가를 전략이 아닌 정체성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화려함으로 시작한 공동체가 아니라, 낮고 천한 자리에서 생명을 품은 공동체인 것입니다.

주님의 길은 ‘좁은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는 군중의 함성보다 침묵의 골짜기가 더 많았습니다. 그분이 걸어가신 길은 환영보다 거절이 많았고, 성공보다 수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야말로 생명의 길이었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개척교회의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을 얻기 어렵고, 성도들이 정착하지 않으며, 재정의 압박이 매일의 기도 제목이 되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이 길이 맞는가?” 그러나 바로 그 고난이, 예수님의 길과 겹쳐지는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는 고난의 가운데서 더욱 진실해지고, 핍박 가운데서 더욱 견고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실패의 징표가 아니라, 순종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 길은 방향이며, 편안은 결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개척교회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은,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적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보일수록, 오히려 주님의 심정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작은 예배 공간에서 함께 드리는 찬양이 때로는 웅장한 성전보다 더 큰 울림이 되는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기억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이 곧 교회의 시작인 것입니다. 낮아짐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숙명이자 특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는 복음서 전체 중 가장 무게 있는 고백 중 하나입니다. 이 기도는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수용하는 순종의 절정이었습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로서, 그 기도는 매일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숫자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머무는 그 자리가 곧 부르심의 자리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를 말하지만, 하나님은 교회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말씀을 전하며, 기도회에 아무도 나오지 않아도 그 자리에 홀로 무릎 꿇는 그 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고난은 교회를 흔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은 교회를 정금같이 만듭니다. 그 고난 속에서 드리는 기도는 더 간절하고, 흘리는 눈물은 더 순결하며, 주님의 손길은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개척교회가 이 고백을 붙든다면, 외적으로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특별히 개척교회라는 이름 아래 서 있는 이들에게, 가장 선명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결국 교회의 시작은 고난에서 비롯되었고, 그 고난 위에 부활의 소망이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으며,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교회가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작고 연약한 개척교회일지라도, 그 길이 주님의 길이라면 결코 흔들릴 이유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며, 그 위에 세워지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온전히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