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with Jesus Story 뉴욕 지방회 설교관리매니저 세미나를 마치며

뉴욕 지방회 설교관리매니저 세미나를 마치며

며칠 전 뉴욕 지방회 목사님들과 ‘설교관리매니저’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이미 작성해 강단에서 사용한 설교를 어떻게 다시 살려 쓸 것인지, 새로운 설교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준비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최근 눈부시게 발전한 AI를 설교 준비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또 그렇게 완성된 설교문을 어떻게 2차 자료로 확장해 갈 수 있는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목사님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깊은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은 도구가 이민 교회에서 홀로 목회하시는 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을지를 먼저 알아봐 주시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격려 속에서 저는 이 프로그램이 처음 시작되던 자리의 고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두려울 만큼 빨라진 속도

요즘 AI의 발전 속도는 솔직히 두려울 정도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회자의 설교는 평신도가 쉽게 평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조직신학, 성경해석학,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어 온 광범위한 신학의 흐름을 붙들고 설교를 가늠한다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목회자의 유튜브 설교를 복사해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이 설교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신학적 정확성부터 원어 해석, 인용과 문맥의 적절성, 설교의 구조, 본문에서 적용으로 이어지는 흐름까지 상당히 수준 높은 분석이 돌아옵니다. 만약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준비한 설교를 AI에게 평가받는다면, 적지 않은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잘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가감 없이, 때로는 아프게 짚어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위협일까요, 기회일까요.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설교관리매니저’가 태어난 자리

설교관리매니저는 바로 그 질문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AI 시대에 목회자가 어떻게 AI를 도구로 삼아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동시에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권위를 지켜내고, 끝까지 성경적이고 본문 중심의 설교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 고민 때문에 저는 이 프로그램 곳곳에 여러 안전장치를 심어 두었습니다. AI가 설교를 대신 써 주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본문 앞에 더 오래 머물도록 돕고, 더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며, 결국 설교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 되도록 하는 장치들입니다. 도구가 강단의 주인 자리를 넘보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은 원칙이었습니다.

AI가 끝내 닿지 못하는 영역

그러나 아무리 AI가 발전한다 해도, AI는 결코 할 수 없고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하고, 그 말씀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AI는 본문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앞에 무릎 꿇을 수는 없습니다. AI는 적용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적용을 자기 삶으로 살아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 속에서 내 삶을 그분께 온전히 드리고,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로 빚어지는 일 ― 이것은 끝내 사람의 자리, 부르심 받은 자의 자리입니다. 강단의 권위는 분석의 정밀함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살아낸 한 사람의 삶에서,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에게서 옵니다.

도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있습니다

좋은 도구의 목적은 사람을 대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저는 설교관리매니저가 목회자에게서 설교를 빼앗는 도구가 아니라, 목회자를 더 본질적인 자리로 돌려보내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고는 기계에 맡기고, 그렇게 아껴진 시간으로 목회자가 더 깊이 묵상하고, 더 깊이 본문을 해석하고, 더 깊이 삶에 적용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깊이 성도들과 교제하고, 한 영혼 한 영혼을 더 정성껏 양육해 가기를 바랍니다. AI가 빨라질수록, 목회자는 오히려 더 느리게 기도의 골방으로, 더 가까이 성도들의 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미나를 마치면서 저는 다시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도구는 변하고 또 빨라지겠지만, 말씀을 살아내며 한 영혼 앞에 서는 목자의 자리만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지켜내시는 모든 목회자들에게, 이 작은 도구가 작은 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