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rveNC 안내문에는 이런 질문 하나가 적혀 있었습니다.
“만일 당신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사는 지역사회가 그것을 알아차리겠습니까?”
짧은 문장이었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자리에서 사라진다면, 그린스보로의 이웃들은 무언가 없어졌다는 것을 느낄까요.
예배는 드려지고 있고 성도들은 모이고 있지만, 그 예배가 교회 문턱을 넘어 마을의 골목까지 흘러가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침례교회들이 8월 1일부터 8일까지 한 주간을 정해 “어떤 프로젝트든, 어떤 날이든” 지역을 섬기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우리 교회도 그 초청에 응답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교회가 택한 자리는 우리 자녀들이 매일 가방을 메고 들어가는 학교였습니다. 8월 한 달 동안 School Prayer Walk 모임을 이어가기로 하고, 그 첫 걸음으로 초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몇 가정이 함께 모여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학교를 위해,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위해, 그리고 그 교실에 앉아 있을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뒤에는 빗자루와 봉투를 들고 학교 주변을 함께 청소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드린 ServeNC였습니다.
이른바 ‘땅밟기’라는 말을 우리가 조심스럽게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주술적 행위가 아니고, 우리의 발걸음에 신비한 힘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다만 여호수아에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3) 하셨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매일 밟고 지나가는 그 땅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 중보하는 일입니다. 멀리서 막연히 기도하던 것을 가까이에서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기도하고 나서 청소를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 된 백성에게 “너희는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7)고 했습니다. 성읍의 평안을 ‘구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기도는 무릎으로 드리고, 그 기도의 열매는 손으로 맺습니다.
주님도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운 것은 몇 봉지의 쓰레기였지만, 그날 학교 주변을 지나던 누군가는 조금 더 깨끗해진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복음은 그렇게 아주 작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이웃에게 도착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부모가 함께 있는 시간보다 교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지식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부끄러운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학교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 다음 세대의 마음이 빚어지는 땅입니다.
이민의 땅에서 자녀를 키우는 우리에게 이 문제는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이들의 마음에 먼저 자리 잡지 않기를, 교육의 자리가 하나님을 지워 버린 채로 채워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닙니다. 세상을 피해 아이들을 숨기려는 기도가 아니라, 세상 한복판에서 믿음으로 서서 그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아이들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 아이는 온실 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아니라, 광야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는 아이입니다.
모세는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신 6:7)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학교 앞 길을 걸으며 기도한 그 시간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길을 갈 때에” 부모가 어떻게 하나님을 찾는지를 눈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으리라 믿습니다.
School Prayer Walk는 8월 한 달 동안 계속됩니다. 아직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도 언제든 한 걸음 나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이 매일 걷는 그 길을 함께 걸으며, 그 땅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도시에 존재하는 이유가, 그 걸음마다 조금씩 더 분명해지기를 소망합니다.







